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3대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 결과 분석 == [[파일:KakaoTalk_20170503_204708932.png|width=500]] ---- 당선 확정 시간이 투표 다음날인 [[1987년]] [[12월 17일]] 오후 3시 3분, 개표 91.6% 이뤄진 상황이었다. [[파일:attachment/uploadfile/13election.jpg|width=500]] ---- '''결국 [[노태우]]가 [[대한민국]] 제13대 [[대한민국 대통령|대통령]]으로 당선되었다.''' 선거 막판 터진 KAL기 폭파 사건은 북풍으로 인한 안정심리와 색깔론을 불러와 노태우 후보가 국민들이 타도한 [[전두환 정부]]의 연장이라는 비난을 희석시키면서 유권자들이 선거를 바라보는 구도 자체를 상당부분 바꾸어 버렸다. 이 때 당선자 득표율이 36.64%이었는데 이는 직접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.[* 2위는 [[제15대 대통령 선거]] 당시 [[김대중]] 후보의 40.27%.] 다시 말해서, 야권의 분열로 인해 국민의 40% 미만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 셈이었다.[* 훗날 [[전두환]]의 부인 [[이순자]]가 회고록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, 노태우 후보 당선 확정 이후 노태우의 부인 [[김옥숙]]을 만났는데 그녀가 싸늘하게 '''민주정의당이 얼마나 인기가 없던지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다'''고 말해 놀랐다고 한다. 사실 이때부터 두 집안은 사이가 썩 좋진 않았는데, 이를 이순자는 '''애증관계'''라고 표현했다.] 뒤집어보면 북의 테러로 여객기가 폭발하고 수백 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북풍이 터졌는데도 집권당 후보의 지지율이 40%에도 못 미쳤다는 건 민주정의당과 전두환 정부가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. 웃픈 점은 그나마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얻은 성적표가 5~6공화국 하에서 치러진 모든 전국 단위 선거를 통틀어서 '''[[민주정의당]]이 얻은 득표 중 가장 좋았다'''는 것이다. 전두환 정권의 직접적인 통제하에서 치러졌던 [[11대 총선]]과 [[12대 총선]]에서 민정당이 얻었던 득표율이 각각 35.6%와 35.2%였으며 [[13대 총선]]에서 민정당이 얻은 득표율은 34%였다. 더군다나 당시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부재자 투표에서 부정선거가 횡행하던 시절인지라 실질적으로 군인표를 빼면 1/3 수준이거나 1/3을 겨우 넘는 수준인 셈이다.[* 여담으로 대통령 후보자가 한 명이면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표를 받아야 대통령이 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